어린 시절에는 자동차를 그저 편리한 교통수단이라고만 생각 했었다.
명절 때마다 부모님과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 댁에 갈 때면
시외버스 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보며, 오랜 시간을 지루함도 모른 채 재미있기만 했었다.
지금은 한강에 많은 다리가 있고, 강남 북을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차량의 홍수 속에 살지만
내가 어릴 때는 서울도심에서 경기도 동부지역을 지나 내륙지방인 충청도로 가려면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했는데, 지금 워커힐 부근에 있는
광진교가 바로 그곳이다. 그때는 흔히 '광나루' 라고 불렀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
군 장교이셨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경기도 광주(廣州)에서 살았다.
당시에는 “경안(京安)” 이라는 지명으로 불렸다.
지금은 발전하여 서울과 큰 차이가 없는 지역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우리가 살던 집근처에
5일장이 섰던 완전한 시골이었다.
그해 추석을 맞아 할머니 댁에 가려고 부모님과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터미널에 나갔는데
버스가 만원이라 우리가족은 도저히 버스를 탈 수가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명절이면 민족의 대이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중간에 버스를 타기가 무척 어려웠다.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은 뒤
아버지의 의견에 따라, 광주에서 거꾸로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여러 명의 어린 자식을 거느린 가장의 어쩔 수 없는 의사 결정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한 귀성길 이었지만, 저녁 늦게야 충주(忠州)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그때 나는 자동차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고,
자동차 소유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검정 고무신 한 짝을 접어서 다른 한 짝에 끼우고, 이것이 멋진 자동차라는 상상을 하며
모래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엄마의 빈 화장품 용기를 세로로 굴리며, 책에서 보았던 멋진 세단을 상상하기도 했다.
어쩌다 아버지께서 타고 오시는 군용지프차를 보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고,
간혹, 휴일이 되면 아버지와 함께 지프차 뒤에 타고 부대에 가보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었다.
때때로,
굴렁쇠 손잡이를 굵은 철사로 만들어서, 굴렁쇠가 닫는 부분에 장구실패를 끼워 넣고,
두 바퀴가 마찰 하면서 생기는 경쾌한 소음을 들으며,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상상을 하며 온 동네를 뛰어 다녔다.
당시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자동차의 모델을 모두 외울 수 있었고, 자동차의 모습을 눈앞에서
보는 듯 설명을 해주기도 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를 매우 똑똑 하다고 착각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 하면서 업무상 자동차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직장 상사의 차를 얻어 타고 업무를 하게 되었을 때,
눈치가 보여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손으로 직접 운전하게 되면서, 나는 차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움직이는 나만의 공간”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사회생활 초기에는 경기도 지방을 다니면서,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즐겨 보기도 했다.한 여름 뙤약볓을 피해 그늘에 차를 세워놓고 오수를 즐기기도 했으며,
가을 햇볓이 내리쬐는 길가에 멍석을 깔고, 고추를 널어 말리는 시골 아낙의 모습을 감상 하기도
했고, 갑자기 내린 폭설에 적잖이 당황 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피서를 다녀 오거나, 가을 단풍을 구경하러 설악산으로 가는길은 정말 행복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의 경춘가도 에서, 낙엽이 휘날리는 쌀쌀한 늦가을의 통일로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던 미끄러운 미시령 산길에서, 나는 내차가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장거리를 다녀온 후,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시킬 때
엔진을 식히느라 냉각 팬이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차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 “수고했다” 는 말을 건넨다.
나에게 차는 나의 옷과 같다.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마음이 무겁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는 내차부터 떠올린다.
그냥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 모든 것을 떨쳐 버리고.
많은 생각과 번민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나만의 공간이 되어 준 것이 내차 였다.
나는 차 속에서 안정을 찾기도 한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 지났던 길옆의 풍경이 변함없이 그대로 인걸 보면서,
나름대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차가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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