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1 2007. 10. 22. 19:06

지난 15년간 나와 내 가족을 무사히 태워주었던 자동차를  폐차했다.

흉하게 실려가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미리 사진을 찍어 놓고 

폐차장에서 차를 가지러 오기전에 필요서류를 차에 넣어두고 자리를 떠났지만

집사람과 둘째녀석이 차를 덥석 집어 올려서 실어 가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 보았다고 한다.

 

▲ 폐차전 아파트 단지앞 에서

 

가장 왕성했던 내 인생 15년을 같이 해온 차를  내 곁에서 아주 떠나 보내고 나니

주차장 한 구석에 세워 두었을 때와는 달리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9148 에서 2342 로 다시 4611로 3차례나 번호판을 바꾸면서

함께 지내온 많은 시간들이 순간처럼 머릿속에 지나갔다

 

새차를 찾아온날 저녁에 아파트 주차장에서

집사람 과 큰녀석 데리고 나와 막걸리를 뿌리며  무사고를 빌었던일

시트 비닐의 사각대는 소리와  문 열때마다 나던 "새차 냄새"

이전에 타던 중고차를 넘기고 새차의 핸들을 잡고 오던

그날 저녁의 "설레임".

 

월부 차값 낼돈 걱정에 잔소리를 하면서도 좋아했던 집사람.

숱하게 넘나들었던 미시령, 진부령 의 미끄러웠던 눈길

그리고 주문진 방파제에서 의 여름

신나게 달려서 물치항을 지나던 바닷길..

진고개를 넘던 길에 잠깐 쉬었던 작은 폭포

둘째 녀석을 임신 한채 찾았던 "설악 해수욕장"

그 겨울 백사장에서 줄넘기 하던 여자아이들의 생동감

또, 설악산의 단풍

그리고 지리산 성삼재

계룡산 자락이며 대둔산의 케이블카

경주박물관의 주차장 그리고....

 

어느해 여름

평화의 댐을 거쳐 오는 구불대는 산길에서

차가 곡예를 할때마다

뒷자리 에서 이리저리 

킬킬대며 뒹굴던 초등학교 저학년 큰 녀석이  

지금은 대학입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무엇보다 가슴이 싸아 해지는것은

그해 여름의 어느 이른새벽

IMF의 아픔을 피해 갈 수 있는 액땜이라는 말에 

집사람이 싸준 "삼색나물" 반찬통을 받아들고

어두운 새벽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대천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구릉에서

남이 볼세라 얼른 바다를 향해 세번씩 합장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차가 모래밭에 빠져 헛바퀴를 돌고 나혼자 당황하여

애를 쓰다가 쓰다가 시간만 흘러가고

인근 부대의 군인 아저씨 도움으로 간신히 빠져 나와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섶에 차를 세우고

"아무래도 고통을 피해 가기가 어려 울것 같은" 불길한 생각에

작은 냇가에 걸터 앉아

나 홀로 긴 한숨을 내쉬었던 기억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아쉬움에 찾아갔던

계룡산 뒷자락에 고즈넉 했던 어느 도인의 우거도 그랬거니와

IMF의 한파를 한몸으로 감당할때

현실이 억울해 새벽에 잠이깨면 대청댐으로 차를 몰고가

가슴에 맺힌 답답함을 긴 한숨으로 토해 낼때도

말없이 나와 함께 해 주었던 친구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진 환경이고

조금더 좋은 차를 타고 있는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떤 새차를 타더라도

젊었던 그시절 그때만큼 뿌듯했고

또 정을 듬뿍 담을 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15년 동안 우리가족을 태우고 눈길, 빗길 안가리며

추울때나 더울때나 편안히 다닐 수 있게 해주고

행복 과 고통을 함께했던 나의 친구 

고마웠다 

잘가거라....

 

굿바이 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