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과 세상살이
선인들은 등산이라는 말보다 “산에 든다” 는 표현을 더 사랑했다고 한다.
그런 표현을 하는 내면에는 등산을 단순히 건강을 지키기 위한 레저활동 이라는 생각보다도
자연과 하나되고 숲을 찾아 마음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더 많이 부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점차 인간이 수명이 길어지고, 이제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퇴임 후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질병 없이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서 천수를 다하는 것에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주말이면 지하철과 버스는 등산객으로 붐비고, 등산복과 같은 기능성 의류를 평상복 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수시로 목격 할 수 있다.
이제는 생활체육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골프애호가 들은 골프가 인생을 닮았다고 한다.
쭉 뻗은 페어웨이로 들어섰다가 순간의 실수로 벙커의 나락으로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벌 타를 물고 다시 시작 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닮았다는 이야기다.
화투놀이를 좋아하는 분들도 화투에 인생의 묘미가 그대로 담겨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내기로 화투놀이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성격을 쉽게 파악하게 된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즐겨 하는 놀이에는 참가한 사람들이 느끼기에 어떤 내용이던지 세상살이의 속성이
담겨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 놀이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회사에서 단체로 참가하는 등산모임에서
등산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친구들과 산속에서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여 술 한잔하는 맛으로 등산을 즐기기도 했고
입산 시 취사가 금지 된 이후로는 이른 아침 빈속으로 산에 올랐다가 땀 흘리고 난 뒤
산장에서 파는 두부안주에 막걸리 한잔을 마실 때 그 시원하고 알싸한 기분이 좋아 등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된 것은 내가 삶의 과정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삶의 무게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를 때였다.
진정한 등산의 묘미는 혼자 걸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며, 나 혼자 한 걸음 떼어 놓을 때마다
머릿속을 지나가는 많은 사념들과 함께 걷다 보면 해답을 얻기도 하고,
숨차게 산길을 오르며 발 밑으로 툭툭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등산과 세상살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에 오를 때 평지를 걷다가 점차 경사로를 지나며 점점 숨이 차오르고 힘들어 지는 것이나,
사람이 태어나 점차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세상살이에 노출되면서 힘들어지는 논리와 같다는 것이 그것이다.
아울러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어 세상살이의 고난과 행복이 교차하는 점도 일맥상통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들 때가 있다.
등산을 하다 보면 어느 산이나 “깔닥고개”라는 이름이 있다.
숨이 턱에 차 깔닥거릴 만큼 힘든 경사길이란 뜻일 게다.
등산이 인생살이와 공통점이 많다고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그러다 보니 등산을 하면서 세상살이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힘들고 숨찬 언덕길을 오를 때 허리를 숙인 채 땅을 보고 걸으면 힘도 덜 들지만
눈으로 보는 발 밑의 길은 그냥 평지로 보인다.
몸은 힘들어도 눈에 보이는 대로 평지라고 생각하고 걷다 보면 경사진 길도 수월하게 지 날수 있다.
세상살이가 힘들 때 누굴 원망 할 필요도 없이 내 발 밑만 쳐다보며,
남과 비교하지도 말고 지내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세상살이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IMF 경제위기 때 보다 더 힘들다는 요즈음, 이 악물고 살아내는 사람들의 고통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각자 살아내야 하는 이유와 살아 낼 수 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겠지만
사회분위기가 점차 삭막해지고 각박해져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고개를 들어 저 높은 곳을 어떻게 오를까 걱정하기 보다, 내 발 밑을 보며 한걸음씩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가파른 깔닥고개를 지나 숨을 고르며 경치를 구경 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산을 오를 때 조금은 근사한 등산복을 입고 싶다.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혹시 겉으로 각박함이 드러나지는 않을 까 염려하는 마음과 같은 맥락이다.
다시 생각해도 등산과 세상살이는 닮은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