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속에서/삶에 대하여

또래의 죽음

카프1 2008. 12. 31. 21:26

힘들었던 2008년 한 해가 이제 저물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추운 날씨만큼 이나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12 29일, 정오를 막 넘기는 시간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부고(訃告)였다

 

언뜻 내용을 보았을 때는 발신자의 부친상 인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발신자 본인의 사망소식이었다.

고인의 휴대폰으로 본인아들의 부친상을 알리고  있었다.

한 해를 마무리 하기 3일전에 이렇게 내 또래의 부음을 접했다.

지난 8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문병을 가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부고를 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고인과 나는 직장동료 였다.

현대전자 근무 당시에 나는 서울에서 대전지점으로 순환근무 발령을 받게 되면서,

이미 지점에 내려가 있던 고인과 같은 사무실 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서울 근무당시에 얼굴은 알고 있었지만, 사업본부가 달라 가깝게 지내기는 어려웠다.

대전에서 사택으로 마련한 아파트가 인근이어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가족끼리도 수시로 만나 식사도 함께하고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며,

연고도 없는 타지에 살면서 정 붙일 곳도 마땅지 않아 서로 의지 하면서 지냈다.

지금도 사진에 남아있지만 여름이면 여러 가족이 모여 함께 인근의 물가로 놀러 가기도 하고,

한집에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IMF 사태로 다른 가장들처럼 우리도 회사를 떠나 각자 흩어져 살길을 찾아야 했다.

나도 그랬지만 같이 근무했던 많은 직원들이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서울로 이사를 했다.

각자 새로운 터전을 만드느라 자주 소식을 전하지는 못했다.

작년 초에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언제 만나서 술 한잔 하자는 말을 나눌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올 8월에 고인의 직속 부하직원이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인이 구강 암으로 수술을 하고 입원 해 있는데, 예전에 대전지점에 근무 할 때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을 한번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연락이 되는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퇴근 후에 병원을 찾았다.

말 그대로 목불인견(目不忍見) 이었다.

이미 말을 할 수 없던, 그 친구는 나와 필담을 나누었다.

그래도 꿋꿋한 모습이어서 완쾌하기를 기원하며 병원을 나왔었다.

  

그런데

어제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영정으로 마주 하게 되었다.

먼저 와 조문을 하고 기다리던 예전 동료 부부와 수인사를 나누고

조문을 하러 들어가 고인의 영정을 보니 눈앞이 흐려졌다.

너무도 생생한 모습 때문에 눈 앞의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고인만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가족들이 사실을 전 해주지 못한 것 같다.

나름 가족들의 입장을 이해 할 수도 있었다.

아직은 한창인 나이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떠 날수 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을 고인이 알았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오히려 더 빨리 생명을 단축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장의 역할을 하느라, 작은 사업을 시작하면서 받은 수많은 스트레스가 발병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남의일 같지가 않았다.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빈소가 소란스러워 졌다.

조문을 온 중년의 신사가 큰 소리로 고인의 이름을 부르며 주위를 아랑곳 하지 않고 걸어 들어오더니, 영정 앞에 쓰러져 격한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하였다.

 

순간 실내가 조용 해졌다.

같은 자리에 앉아있던 예전 고인의 부하직원에게 물어보니,

고인의 직장 후배이자, ROTC후배 라고 했다.

생전에 선후배간 돈독한 관계를 맺어 왔다고 했다.

말을 전하는 그 친구도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보였다.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었다.

통곡으로 죽음을 슬퍼해 주는 후배를 둘 수 있었던 고인은

짧은 삶이었지만

참 열심히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 졌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장례식장을 빠져 나오면서 건강하게 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인 생전의 성품처럼,

마지막으로 이승과 작별을 고하는 날도 올해를 넘기지 않도록

마지막 날에 영면에 들었다.

 

이제 2시간 반 후면 올해도 지나간다.

나에게도 참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었다.

아직 시련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희망의 단초를 찾기 시작했다.

새해에는 건강과 희망이 모두함께 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