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일본의 동북부에 발생한 지진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10미터가 넘는 쓰나미(津波)가 마을을 강타해 마을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원전의 폭발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고 있으며, 자동차, 철강산업의 피해로 인해 GDP의 1%정도가
감소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그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다.
처음에 일본 지진소식을 접했을 때 자주 들었던 내용이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YTN, MBN등
뉴스케이블 방송의 특별방송을 계속 지켜보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속속 밝혀지는 피해 규모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하기 어려웠다.
인가의 지붕 위에 올라앉은 배가 쓰나미 당시의 위력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인터넷과 방송으로 일본의 지진 피해를 보면서 나는 한가지 궁금증이 들기 시작했다.
국가적인 대재앙 속에서 한 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리고 생활의 터전을 상실한 일본인들이
그렇게 침착하고 냉정하게 질서를 지키며 불평불만 없이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지 정말 의아스러웠다.
아직까지 사재기나 약탈이 있었다는 뉴스를 듣지 못했으며, 컵라면 하나를 사기 위하여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자기 차례가 오더라도 먹을 만큼만 사고 남들을 배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구호품 전달 현장에서도 자기 몫으로 작은 박스 하나씩 받은 사람들이 감사를 표하며 물러나고
더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없다.
주유소에 끝도 없이 차량이 늘어서지만 누구 하나 새치기 하는 사람이 없고, 주유소까지
교차로를 두 번이나 지나는 동안 서두르지 않고 차례대로 한대씩 건너더라는
한국 기자의 취재기를 읽어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일본의 시민들은 재해현장에 일부 남아있는 신호등에서 파란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직접 시청한 TV뉴스에서도 재난 상황에 대하여 인터뷰하는 일본인들은
그처럼 큰 어려움에 직면해있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침착하였고,
오히려 가벼운 미소까지 띠고 있는 듯하였다.
목소리를 높여 원망하거나 울부짖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오늘 아침 내가 받은 e-메일에는 일본여성이 트위터에 올렸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담겨있었다.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죄 많은 일본이지만, 한국의 여러분, 기도해주십시오,
전철도 모두 멈추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도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나와 같은 궁금증을 전 세계 사람들도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오늘 기사에는 대재앙 앞에 침착한 일본인들의 비결을 보도하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 기사는 몇 가지로 그 비결을 분석하고 있다.
첫째, 일본은 고도로 안정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 평균소득이 3만5천불을 상회하고 빈부의 격차가 덜하기 때문에 비상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개인적 대응에서 여유가 있으며 혼란에 직면했을 때 덩달아 혼란에 빠지는 것보다 질서를 지키는 게
전체로서는 이득이라는 것을 공감 한다는 것이다.
보육원 에서 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도록 교육을 받으며 이것이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걸 체화(體化)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줄을 서는 게 흐트러지면 결국 자신이 손해라는 점,
비상시 시스템이 공평하게 작동하리라는 점을 믿기 때문에 질서를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이
건국대 박종명 교수의 설명이다.
둘째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가능한 최선을 다하는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비결이다.
한림대 남기학 교수는 “역사 문화적으로 개인이 나서기 보다는 전체를 의식하면서
구성원으로 위치를 잘 수행하는 습관이 작용했다” 고 분석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신분질서가 강해 한번 무사면 무사, 상인이면 상인,
농민이면 농민으로 살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분상승을 추구하기 보다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데서
자아실현의 방법을 찾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시적인 재해대비 교육을 꼽는다.
2009년 까지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4년간 영사관을 지낸 송파경찰서 이영철 경정은
일본 생활중 2005년과 2007년 2차례의 큰 지진을 겪었다고 했다.
“내륙지역에 지진이 나 도로가 절단되고 산 사태로 차량이 파괴돼 사상자가 발생 했던 큰 지진이었지만
당시 목격했던 일본인들의 침착했던 모습은 이번 지진 대응과 정확히 일치했다” 고 이경정은 말했다.
이러한 대응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육” 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은 이번 피해로 부족했던 매뉴얼을 보완해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교육시켜 또 다른 피해를 반복하지 않을 것 이라고 확신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무지막지한 자연의 힘에 상처를 입은 미국인 들은 뉴올리언즈(New Orleans) 등지에서 발생한
약탈과 방화, 총격전, 성폭행 등 인간의 행위에 더 큰 상처를 입었다.
무법과 혼란의 상태가 지속 되면서 심지어 경찰까지 약탈행위에 가담 했던 것으로 알려져
미 방위군이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 될 수 밖에 없었다.
전세계 최 강국, 최 문명국이라는 미국의 모습이 그러했다.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 시민들은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새치기나 약탈행위는 전혀 발생되지 않고
수백 명이 줄을 서 자기 차례만을 기다렸다.
피해지역에 투입된 자위대는 구조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지금부터 248년전
조선의 사대부였던 김인겸(金仁謙)은 영조39년 계미통신사절단(癸未通信使節團)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일본을 다녀온 후 장편 사행가사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를 지었다.
1763년 8월3일 부터 1764년 7월8일까지근 일년간을 일기형식으로 기술한 기행문 형식으로
보기 드물게 한글로 기록되어 있는데, 전체 4편으로 구성되어 1편은 국내 편,
2,3편은 국서(國書)를 전달 하기까지의 일본 편, 4편은 강호(江戶)에서
집에 당도 하기까지의 회정편(回程篇)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일본 편을 살펴보면 일본의 요청에 의해 방문하는 문명국 조선(朝鮮)의 사신으로서
문화를 전달하러 가는 긍지(矜持)와, 선비로서 자의식에 차있어
왜인(倭人)을 야만시하고 적대시 하는 시각으로 일관 되어있다.
오사카(大阪)성에 이르러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도시의 장관과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일을 생각하며 분개하는 장면도 보인다.
그 야만인들에게 전 국토를 유린 당한 임진왜란(1592)이 일어난 지
171년이나 지났지만 그때까지도 문화적 우월감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문명의 차이가 지금까지 유지 되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최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을 것이다.
이번 상하이 영사관에서 터진 부끄러운 스캔들에 엘리트 출신 우리 외교관이 줄줄이 연루된 사실을 보면서,
또 일본에서 발생한 이번 재난이 예수를 믿지않기 때문이라는 우리나라 종교계 수장(首長)의 의식수준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250 여년전 문명국 조선의 기개 있던 선비 김인겸(金仁謙)이 살아 돌아 온다면
현재의 시국을 보고 어떠한 글을 남길 것인지 무척 궁금 하다.
지난 11일 이번 지진으로 제일 피해가 큰 일본 동북부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南三陸)마을 사무소에서
<미키>라는 여직원은 강진에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기 직전까지 마을 사무소에 남아 최후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고 대피 방송을 했다.
딸의 마지막 모습을 이웃으로부터 전해 듣게 된 <미키>의 어머니 <엔도 미에코(遠藤美惠子)> 여사는
“나의 자랑스러운 딸인 미키가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 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앳되고 예쁘장한 <미키>의 사진 옆에 이시노마키에서 4개월 된 아기를 구하고 미소를 띠고 있는
나이든 일본 자위대원의 사진이 나란히 대비 되어 보였다.
나는 일본에 우호적인 편은 아니다.
그 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행목적 이외에도 소니, 마쯔시다, 야마하 등 일본 업체의 직원들을
업무적으로 만난 경험도 있기 때문에 흔히 <혼네(本音)> 와 <다테마에(建前)> 로 불리는 그들의 속 마음과
겉으로 보여주는 태도의 속성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이번 국가적 재난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보면서 혹시 내 안에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일본에 대한 편견의 잔해를 없애버리려 한다.
아울러 일본이 이번 재난을 극복하고 다시 제 자리를 찾게되면, 일본 국민이 보여준 모습을 지켜본 전 세계인들은
일본을 진정한 선진 의식이 있는 나라로 평가 할 것이므로 일본의 국가 신뢰도가 더욱 상승 하여
일본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공고한 위치에 서게 될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시간의 흐름속에서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리적 결합, 화학적 결합 (0) | 2015.07.09 |
---|---|
다시 또 가을 (0) | 2011.09.29 |
어떤 이의 회한(悔恨) (0) | 2010.09.13 |
이집트 문명전 (0) | 2009.05.04 |
내차 이야기 (0) | 2008.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