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속에서/사는 이야기

이집트 문명전

카프1 2009. 5. 4. 19:23

5월의 첫째 일요일 이었는데 징검다리 연휴의 중간이라 휴일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된 듯하다.

중학교에서 첫 중간고사를 끝낸 둘째아이를 데리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

이집트문명전  '파라오 와 미라' 를 보기 위해 서였다.

 

▲ 박물관 외벽의 대형 현수막 

 

박물관 입구의 도로는 주차장 진입을 위해 차량이 수Km나 늘어서 있고 도로 좌우에도

주차된 차량으로 끝이 안보였다.

길건너 도로변 제일 앞쪽에 간신히 주차한 뒤, 온 길을 되돌아 한참을 걸어서 박물관으로 갔다.

매표소에서도 한참을 기다렸는데, 전시장 입구에서도 입장을 기다리는 인파가 말그대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수차례 와 보았지만 그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렸던 경험이다

미이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참고 기다리는데 벌써 다리가 아파왔다.

 

▲ 영상으로 보여주는 고대 이집트인의 생활

 

전시장도 입구에서 부터 사람들이 몰려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안내를 도와주는 전자도우미 이어폰을 꽃은 학생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가까이 접근해서

전시물을 관람 하기도 어려웠다.

안내하는 도우미들이 입구보다 안쪽부터 관람하시는 것이 좋다고 알려 주었다.

도우미의 의견을 따라 안쪽부터 관람키로 했다.

 

전시는 크게 4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부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신화에서 등장하는 신들과 내세관을 소개한다.

2부는 이집트 문화유산의 키워드인 파라오를 다루고 있다.

3부는 고대 이집트인의 생할상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4부는 고대 이집트의 내세관을 보여주는 부장품과 미이라를 보여준다.

 

이집트 인들은 오시리스가  죽은 자의 세계를 통치하고 호루스가 산자의 세계를

통치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

스핑크스와 같이 돌을 이용해 조각한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주 세밀하게 조각된 한 유물들을 보면서 마땅한 장비도 없이 그런 조각품을 남 길수

있었던 고대 이집트 인의 재주가 감탄 스럽다.

그러나 전시물은 대부분 작은 크기로 시선을 끄는 것은 없었다.

전시회의 상징물로 인쇄물이나 화보에 등장하는

호루스와 호렘헤브(Statue of Horemheb with horus)가 152cm의 높이로

비교적 큼지막 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파라오는 신의 아들이자 대리자로서 이집트를 통치하는 절대자 였다.

이들은 절대권력으로 위대한 건축물을 건설하고, 정복전쟁을 수행하였으며

나일강을 관리하면서 이집트인의 농경을 지휘하였다.

죽어서도 피라미드나 화려한 왕릉에 뭍혀 다시 신이 되었다.

무덤내에 그려진 벽화나 파피루스 의 기록을 통해 고대이집트인의 생활을 파악 할 수 있었다.

 

 

▲ 전시된 파피루스 나무

 

빵과 맥주를 즐겨먹었고 미용과 청결을 위해 가발을 썼으며 화장을 한 증거로 여러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시 전시의 백미는 2관에 전시된 미이라 였다.

네스콘수의 미이라(Mummy of  Nes khonsu in cartonnage Wrapping)는 기원전 760-656년

테베로 추정된다.

아마포로 전신을 칭칭 감은채 전시된 여자 미이라는 원형그대로 유지 되어있었다.

얼굴부분이 작은 원형으로 오픈되어 내부의 미라 얼굴이 보였다.

검게 변색된 피부와 눈 과 코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미이라를 만들때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내장을 빼내어 담았다는 카노푸스의 상자도 전시 되어있다.

같은 용도로 사용 되었다는 돌로 만든 세로형의 뚜껑이 있는 용기도 4개가 진열되어있다.

미국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미이라의 제작과정이 흥미롭다.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옆구리로 내장을 제거해 따로 보관하였으며 사후에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심장은 그대로 시신속에 두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뇌의 가치를 몰라 코를 이용해 빼낸 뇌수는 그대로 버렸다고 하며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신내부에는 충진재를 채워 넣었다고 한다.

시신을 소독한뒤 방부처리를 하여 송진과 향료를 발라 아마포로 전신을 감아서 외관을 씌웠다.

외부에서 제작된 미이라는 발송지를 표기한 나무로 만든 작은 꼬리표가 달려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입구에 많이 몰려 있었다.

우리가 먼저 관람을 하고나니 관람의 요령부득인 사람들이 안쓰럽다.

입구쪽에서 인파에 밀려 못보고 지나친 부분을 보려는데, 뒤에서 갑자기 밝은 전등이 켜졌다.

기자의 어깨에 맨 ENG카메라에 쓰여진 표식을 보니 KBS다.

방송국에서 촬영을 나온 것 이었다.

불빛속을 자세히 보니 눈에 익은 작은 키의 중년남자가 보였다.

자유선진당 총재였다.

 

▲ 정치인 Spot 촬영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이내 다른 쪽으로 사라졌고, 그쪽에서 또 한번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환한 조명등이 켜졌다.

입장료는 내고 들어왔을까? 또 우리처럼 많이 기다렸을까? 하는 우스운 궁금증이 생겼다.

 

나도 다리가 아파왔다.

영상관에 들러 기다리다가 빈의자가 나자 얼른 아들녀석을 앉게했다.

잠시 쉬면서 영상물을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을 나오자 박물관 1층 카페를 찾아서

아들녀석과 함께 도넛과 커피한잔, 쥬스로 피로를 달랬다.

기왕 온김에 박물관3층에서 전시중인 "고려왕실 도자기전"을 보기로 했다.

고려청자 에서 부터 분청사기 조선백자로 이어지는 진열품을 보면서 나름대로 개념을

정리 할 수 있었다.

 

 

▲ 고려왕실의 도자기전 배너  

 

역시 고려청자의 귀족스러움은 그 색상에서 부터 확연한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유약이 흘러내려 부위에 따라 두껍고 또 얇게 발라진 모습이 마치 엊그제 생산 된 것 같다.

그래서 수백년의 간극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미이라전 과는 달리 박물관 에서는 플랫쉬 사용을 제한하면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 국보95호 - 고려청자

 

국보 95호 지정된 자그마 하고 세련된 고려청자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참을 서있었다.

참 대단한 기능과 예술 혼을 간직한 민족이다.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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